맥박 쥐여 흔들린다.

금세라도 숨통 콱 닫혀 아가리 문 채로 마침표 갈길 줄 알았지.

태어났던 그때처럼.

 

 

 

 

#월간은해 8월호

처치 곤란한 밤

w.dd

 

 

 

 

 

 

a. 이동해는 나와 같은 날에 버려졌다. 몇십 년 만에 온 폭염이라고 했었다. 해가 떨어진 지 한참이었지만 채 식지 않은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을 꽉 감싼 낡은 담요 안에서 고스란히 느끼며 꼴에 동기임은 알아봤던지 앙상블로 앞다투어 아가리를 찢었다. 꼬박 반나절이 지나서야 우리를 발견한 보육원 원장은 이렇게 된 김에 형제처럼 지내라며 나와 이동해에게 같은 성을 붙였다. 존나 별 지랄 같은 생각이었지. 외부적으로는 또 그게 먹혀들어서 몇 년간 나는 이동해의 형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썼다. 말문이 터졌을 때부터 엄마, 아빠라는 단어 대신 눈칫밥만 욱여넣고 자랐던 나는 꽤 어린 나이에 어렴풋하게나마 이곳은 지내기에 썩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고, 가끔 여기서는 볼 수 없는 반짝거리고 큼지막한 자동차에서 낯선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내릴 때마다 살 부대끼며 꽉 들어찼던 잠자리가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자면서 한 번 뒤척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보다 그들의 손을 붙잡고 녹이 슨 철문을 벗어나는 아이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건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감이 왔다.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들의 특징을 하나씩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얌전한 표정으로 산만하지 않는 선에서 싹싹하게 예의 바른 문장들을 늘어놓았다. 입가에 경련이 오도록 입꼬리를 당긴 덕에 내게 호의적인 어른들도 꽤 있었다.

 

웃긴 건, 이동해는 정말 내가 자기 형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는 거다. 머리카락을 굵게 말아 넣은 여자가 관심을 표하며 내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이는 동안 이동해는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더러운 티셔츠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칭얼댔다. 눈에 띄지 않도록 팔을 뒤로 돌려 이동해의 손을 쳐내면 귀청이 떨어지도록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그 정도가 되면 내 알량한 착한 아이 코스프레는 이미 어른의 눈에는 간파당하고도 남았다. 굳은 표정으로 보육원을 나가는 여자의 등을 한참 노려보다가 이동해에게 그랬다.

 

씨발 새끼가.

 

식당에서 다 쉬어버린 나물을 뒤적이다가 건너편 테이블에 잔뜩 때가 끼인 교복을 입고 앉아있던 제일 나이 많은 형의 입에서 들은 말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듣는지도 모르는 이동해에게 악에 받쳐 박탈을 토해냈다. 좆같은 새끼. 씨발 새끼.

 

 

b. 제법 시간이 흐르면서 커버리는 몸집에 더이상 후보 자체에도 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부터, 그들의 환심을 사는 일은 내버려두었다. 대신 이 망할 보육원이 돌아가는 상황을 살폈다. 머리가 굵은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자질구레한 일들을 몇 가지 처리해 주면 제법 큰 건덕지가 떨어졌다. 예를 들어 잔뜩 때가 묻은 교복 같은 것들. 반대로 이동해는 입을 떼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더이상 그들의 관심을 끌지 않게 된 것처럼 더이상 입을 벌려 울어 재끼는 짓을 하지 않게 된 것을 제외하면 변한 것이 없었다. 쓸모없는 짓이라는 것을 다른 이유로 동시에 알아차린 셈이었다. 자주 자르지 않아 눈을 덮을 만큼 길어진 앞머리는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탓에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조용하다, 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동해의 표정에는 사랑받지 못함과 현실 감각이 없는 먹먹함 따위의 것들이 덕지덕지 뒤섞여있었다. 그 얼굴로 여전히 더러운 티셔츠의 옷깃을 만지작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상황을 봐서 평범하고 적당한 아이들을 골라 친구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두었지만 이동해는 언제나 혼자 있었다. 남한테 자기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는 듯 그저 고요히 흘러다녔다. 문제는 어디서나 조용하고 혼자 있는 아이는 질 낮은 새끼들의 타겟이 되기 십상이라는 점 하나뿐이었다.

 

 

c.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알릴 부모가 없다는 것과 딱히 알릴 배짱도 없어 보이는 이동해는 하루가 멀다하고 교실 밖으로 불려갔다. 하나밖에 없는 교복은 -그마저도 내가 구해다 주었다.- 닦이지 않는 핏자국과 흙더미들로 본 형태를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익숙한 듯이 뒷문을 열고 나가는 녀석의 등판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끝없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저녁 늦게서야 잔뜩 녹이 슨 철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동해에게 욕을 뱉었다. 병신 새끼. 좆같은 새끼. 더이상 얻어터질 구석도 없어 보이는 얼굴에 시선을 박은 채 욕을 씹다 보면 눈알에 핏발이 서렸다. 이동해는 말없이 손을 뻗어서 꽉 쥐어진 내 주먹 위로 덮었다. 못나게 자란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어 기어이 검붉은 액체를 터트렸다. 마디마다 상처가 벌어진 이동해의 손바닥에 내 피가 묻어났다. 맞닿은 손바닥을 사이로 혈관이 팔딱거리며 팽창하는 감각이 들어찼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그 감각이 어떨 때면 미칠 듯이 갈망의 목적으로 속박되어 나는 꽤 자주 이동해의 면전에다 쌍욕을 씹었다.

 

 

d. 인생 한번 좆같이 영위하는 와중에도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현실적인 일상이 걸려들 때가 있다. 오늘이 꼭 그랬다. 지루하다 못해 차라리 뇌가 멈춰버리기를 희망하던 수업이 모두 끝난 뒤 텅 비어버린 교실 구석에 자리 잡은 쓰레기통을 쥐었다. 끄트머리를 질질 끌고 가 칠판 앞에 서서 귀퉁이에 적혀 있는 '주번 - 19번' 의 19번을 지웠다. 분필을 들어 삐뚤하게 20번을 채워 넣었다. 끼긱, 하고 새 분필의 모서리가 칠판에 긁히는 기분 나쁜 소음이 울렸다. 후문에 위치한 소각장에 다다라서 파란색의 쓰레기통 입구를 털어 넣을 때였다. 낡은 창고 안에서 꼭 분필이 칠판에 긁히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교내 유명 인사들이 사이좋게 둘러앉아 음담패설이나 하며 몸속에 타르를 축적하는 중이겠거니 했다. 창고까지 몇 걸음 앞두고 질질 끌렸던 슬리퍼를 고쳐 신었다. 낡은 문이 제법 큰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새하얗게 질린 이동해가 튀어나왔다. 결코 예상한 장면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허둥거리던 이동해가 내 팔을 쥐어 잡고 품속으로 휘청였다. 단추가 죄다 뜯겨나간 교복 상의 안으로 더러운 반팔 티셔츠도 너덜거리고 있었다. 시선이 드러난 허리춤의 맨살로 내려갔다. 검붉게 부어오른 상처가 두세 개쯤 자리잡혀 있었다. 미세하게 살이 지져지는 냄새가 풍겼다. 이동해의 덜덜 떨리는 손이 나의 손목을 지나 손등을 덮었다. 순간 팽창하던 혈관이 툭 끊기는 것 같았다.

 

 

e. 폐 대신 이동해의 살갗에 타르 더미를 지져 끈 새끼들은 총 다섯이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된 채로 정신없이 달겨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손마디의 뼈와 광대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멍청한 새끼들은 한참을 처맞고 나서야 쪽수를 이용할 정신이 생겼는지 그제서야 두 명이 내 팔을 꿰어 잡고서 버팅겼다. 복부를 걷어차이면서 엎어진 그 상태로 발길질이 쏟아졌다. 목구멍까지 넘어온 위액을 입안에 들어찬 핏덩이와 함께 긁어 뱉으며 몸을 웅크렸다. 제풀에 지쳐 발길질을 멈출 때까지 꾸역꾸역 버티는 것은 보육원에서 배운 몇 안 되는 것들 중 사실 꽤 쓸모있는 익힘이었다. 모래가 섞인 가래침의 흔적들을 피해 창고 문에 등을 기댔다. 이동해가 발을 끌고 내 앞에 서서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아 잔뜩 긁히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등신 새끼. 그렇게 멍청하게 벌벌 떨고만 있을 거면 가서 사람이나 좀 불러오지.

 

씨발.

 

입가에서 익숙하게 욕설이 새어 나왔다. 이동해의 손은 한참이나 내 시야에서 멈춰있었다. 내놓아야지.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제 옷깃만 쥐고 있는 녀석의 손을 노려보고 있자니 눈가 주위로 뜨거운 것이 올랐다. 얻어맞은 폐부가 공기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해 기침이 났다. 쿨럭이면서도 나는 욕을 씹었다. 잔뜩 쓸리고 베여 핏방울이 들어찬 손을 들어 이동해의 손등을 덮어 쥐었다. 시야를 들어 이동해의 얼굴을 찾았다. 회색을 들이부은 것마냥 온갖 처연의 감정을 잔뜩 담은 그 얼굴. 해가 넘어간 지 꽤 오래였지만 낮 동안 받은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아스팔트에서 후덥지근한 기운이 올랐다. 닿인 슬리퍼의 밑창부터 회색의 교복바지가 아스팔트를 타고 끈적하게 녹아 흘러내렸으면 했다. 다음에는 이동해의 상처투성이인 허리춤이, 시선이 맞닿은 눈이, 코가, 입술이 녹아버리는 피부를 타고 괴상하게 흘러내려 온통 끈적한 것들 위로 툭 떨어졌으면 했다. 마주 잡은 손바닥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렇게 열대야에 녹아 사라졌으면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러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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