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

w.dd






야, 동해. 체육관 가자. 애초에 오전 수업의 반나절을 체육복 차림으로 보낸 혁재가 우렁차게 목소리를 높혔다. 정작 몇 안 되는 학생들이 남아있는 교실에서 이름을 불린 동해는 앉은 자리에서 어물쩡거릴 뿐이었다. 아직도 체육복 안 갈아입었냐? 혁재가 교복 셔츠를 걸친 동해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동해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동해는 오늘 하루 혁재의 얼굴을 보기가 상당히 껄끄러웠다. 혁재와의 관계가 단순한 친구 사이는 아니라고 느낀 게 고작 이 주 전이었다. 혁재는 어떤 마음인지 몰라도 동해는 어렴풋이 제 감정을 짐작하고 있었다. 혁재를 좋아한다. 



아무리 그래도 몽정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었다. 아침에 손에 쥐고 좌절했던 속옷처럼 동해의 기분은 종일 축 젖어있었다. 속도 모르고 혁재의 채근이 이어졌다. 교복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리는 동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혁재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워 등을 돌렸더니 뒤에서 탈의하는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있다는 생각에 괜히 온 몸이 더 달았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텅 빈 교실에 미묘하게 미열이 불었다. 손가락이 지나간 단추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 점점 커졌다. 위험했던 순간에 타이밍 좋게도 복도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혁재가 시선을 거둔 사이 동해는 재빨리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동해는 알량한 죄의식까지 다 들었다. 입었으면 가자. 혁재가 익숙하게 동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평소 같으면 지금 내 어깨를 팔걸이로 쓰는 거냐는 둥 얼마 차이도 안 나는 미세한 키 높이로 내가 더 크니 어쩌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뱉었을 법도 한데 동해의 입은 일자로 꾹 다물어져 있었다. 혁재는 티나지 않게 동해의 얼굴을 힐끔 살폈다. 



혁재와 동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체육관에서는 신체능력검사를 대비해서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의 개인 연습이 이어졌다. 2인 1조로 짝을 지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와중에도 동해는 굳이 저번주까지 짝이었던 혁재를 지나쳐 종운을 데리고 갔다. 아침부터 시작됐던 동해의 이상한 행동에 혁재의 눈이 집요하게 동해를 쫓았다. 살짝 붉은 동해의 귓볼 어디 쯤 시선이 닿았을 때, 혁재의 입가에 슬핏 웃음이 걸렸다. 혁재는 눈치가 빨랐다.




4.5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급식실로 달려가는 학생들 틈에서 동해도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이려했다. 시도만 했다. 어디 가, 나랑 뒷정리 해야지. 그대로 혁재에게 뒷덜미가 붙잡혀 다시 체육관 한복판으로 질질 끌려갔다. 종운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구조 요청을 해 보았으나 점심 시간 앞에서는 씨알도 안 먹혔다. 동해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둘이서 겨우 들어올린 마지막 매트가 풀썩 바닥으로 떨어졌다. 체육관 구석에 위치한 비품 창고실 안에는 잡다한 것들이 대충 쌓여있었다. 동해는 오래 돼 보이는 뜀틀 위에 걸터 앉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따라 들어온 혁재가 손을 뒤로 해서 창고실 문을 닫았다. 손가락이 바쁘게 문고리 근처에서 움직였다. 문이 조용히 잠겼다. 너 그래서 만점 못 받는다. 혁재가 툭 시비를 걸었다. 지랄, 니나 잘해. 너 윗몸일으키기 존나 못 하던데? 아, 또 뭔 개소리야. 평소처럼 투닥대는 말투에서 장난끼가 묻어났다. 혁재는 아예 널부러진 매트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턱짓으로 동해를 불렀다. 야, 형아가 에프엠이 뭔지 보여 줄게. 군대도 안 갔다 온 새끼가. 동해가 툴툴대며 마지못해 혁재의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혁재의 다리를 꼭 쥐고 앉은 동해는 하나, 하고 입으로 숫자를 세었다. 혁재의 상체가 세 번쯤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을 때 동해의 시선이 슬그머니 갈 곳을 잃었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빠르게 올라오는 탓에 혁재의 얼굴이 동해의 코 앞까지 왔다가 대놓고 눈이 마주쳤다. 다섯. 숫자를 세는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고개를 숙였는데도 입으로 뱉어지는 혁재의 숨이 목선에 닿아와서 동해는 목을 바르작 비틀었다. 꿈에서 느꼈던 숨결이었다. 직접적으로 꽂히는 더운 숨. 바짝 감각이 서는 느낌에 동해는 쥐고 있던 혁재의 다리를 내팽겨쳤다. 아, 지랄 그만하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매트에 나동그라진 혁재가 와락 동해에게 달려들었다. 죽을래? 너 해 봐. 에프엠 자세로 봐 준다니까. 혁재의 눈빛에 잔뜩 장난끼가 서려있었다. 씨발, 진짜아. 동해가 마지못해 혁재와 자리를 바꿨다. 접은 다리가 혁재의 품 안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뒤로 누운 동해가 천장을 보며 한숨을 폭 뱉었다. 아직 볼 언저리에 자리 잡은 열기가 채 빠져나가지 않았다. 밍기적 상체를 들자 시야 가득 혁재의 얼굴이 찼다. 황급히 시선을 내려깔자 포커스는 입술과 목젖이었다. 셋, 하는 소리에 맞춰 동해는 아예 눈을 꼭 감고 상체를 들었다. 혁재가 낮게 웃었다. 다음은 분명 넷이었는데 소리 대신 동해의 입술에 무엇인가 살짝 닿았다. 놀란 동해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혁재가 두 개만 더 해, 재촉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반사적으로 등을 내렸다가 다시 올린 동해의 입술로 이번에는 정확하게 혁재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일순간 동작이 멈췄다. 혁재는 웃기만 했다. 하나 더 남았어. 친절히 동해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준비 상태로 돕기까지 했다. 다시금 천장이 보였을 때 동해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입술이 스쳐 지나간 자리 뿐만 아니라 목이며 귀며 몸의 감각이 쏠린 모든 곳이 화끈거렸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마냥 멍한 느낌으로 천천히 상체를 들어올리자 혁재의 손이 동해의 뒷목을 잡아챘다. 자연스럽게 동해의 입술이 벌어졌다. 혁재의 혀가 달큰하게 동해의 입 안을 자극했다. 아랫입술이 달싹였다. 말캉한 감각이 구석구석을 아찔하게 관통했다. 혁재의 손이 맞닿여진 목덜미가 데일 듯이 뜨거웠다. 물기가 담긴 입술이 천천히 떼어지고나서 혁재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 좋아하지. 물음의 의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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