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은해 4월호

TWO TOO

w.dd







1. 문과VS이과


새학기의 설렘이 지속되고 있었다. 꽤 풀린 날씨에 동해는 따로 걸친 아우터 없이 교복 차림으로 등교를 했다. 동해의 왼쪽에서 따라 걷는 혁재도 마찬가지였다. 교문이 가까워지자 동해는 툴툴댔다. 나도 걍 이과 쓸 걸 그랬나. 지랄, 수포자 새끼가. 혁재가 맞받아쳤다. 아는 애들 하나도 없단 말이야. 눈썹을 찡그리며 애꿎은 운동화 앞코만 툭툭 걷어 차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혁재는 동해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덧붙였다. 금방 생기겠지. 이따 봐. 손 인사를 하며 자기 반으로 휙 들어가버리는 혁재의 뒷모습을 보며 동해는 속으로 꿍얼거렸다. 생기긴 좆도. 결국 동해는 제법 큰 소리로 혁재를 다시 불러냈다. 야, 이혁재. 뒷걸음질로 뒷문 사이에 빼꼼 얼굴만 내민 혁재가 표정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D 쉬는 시간마다 놀러 와.


H 쉬는 시간은 10분이고 평균적으로 남성의 걸음 속도를 따졌을 때 1.38m/s 정도라고 치면 250m 떨어진 니 반까지 왕복만 6분이 넘는데 너무 효율이 떨어지지 않냐?


D 걍 꺼져, 씨발. 오기만 해.






2. 프로 사과러


둘은 1학년 때 같은 반에 배정되어 매일 세트로 붙어다녔다. 이혁재 하면 이동해가 따라 붙었고, 이동해 하면 이혁재가 따라 붙는 순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동해는 문과로, 혁재는 이과로 반이 나뉘었다. 서로 당연하게 알고 있던 결과였지만 막상 반 배정을 받고나자 가라앉는 분위기에 혁재는 괜히 장난을 걸었었다. 아, 드디어 이동해 안 본다. 동해는 그 말을 듣자마자 혁재를 걷어찼다. 좋냐, 시발놈아? 아, 아니....... 얻어맞은 건 자기인데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라서 열을 내는 동해의 모습에 혁재는 당황해서 허공에 손만 휘저어댔다. 



H 야, 걍 장난이지.


D 씨발, 그래. 나만 서운해.


H 그래쪄? 동해, 오빠랑 반 갈려서 서운해쪄?


D


H 미안.


H 진짜 미안.






3. 아는 애가 없기는


둘은 등교했던 것과 똑같이 나란히 하교했다. 교문을 막 벗어났을 때 4교시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로 열을 토해내던 동해가 말을 멈췄다. 아, 생윤 안 가지고 왔다. 웬 생윤? 숙제 있어. 인상을 구긴 동해가 학교 쪽으로 등을 돌렸다. 금방 가지고 올게. 뛰어가는 동해를 보다가 잠시 후에 혁재는 머리를 긁적였다. 책상 서랍 속 놓고 온 문제집이 생각났다. 교실로 뛰어 들어가 문제집을 챙긴 혁재가 동해의 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기가 없는 걸 봤으면 바로 연락이 왔을 텐데 잠잠한 걸 보니 아직 교실에 있는 게 뻔했다. 아직까지 뭐 하냐. 툴툴대며 걸음을 옮기다가 동해네 반 교실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인영에 혁재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한 명은 동해였고, 한 명은 제가 모르는 여학생이었다. 동해의 앞으로 예쁘게 포장된 무엇인가가 내밀어졌고, 여학생이 수줍게 얘기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고백인 것 같았다. 당황한 동해의 눈이 도록도록 굴러가다가 뒷문 너머 우뚝 서 있는 혁재와 마주쳤다. 동해가 꿀꺽 침을 삼켰다.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혁재의 고개가 휙 돌려졌다. 혁재는 교복 바지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왔던 복도를 걸었다. 뒷모습밖에 안 보였지만 동해와 함께 있던 모습이 제법 잘 어울렸던 것 같았다. 손에 꼭 쥐고 있었던 문제집이 볼품 없이 구겨졌다.






4. 나도 알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작년 가을인가, 2학기 중반 즈음 혁재도 고백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언제 어떻게 봤는지조차 의문인 혁재에게 내일까지 대답해 달라고 그랬다. 하굣길에 그 소식을 들은 동해는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자기가 고백 받은 것도 아닌데, 안 돼. 싫어. 단호한 단어들만 골라서 미리 혁재의 거절 시나리오를 썼다. 근데 그 선배 꽤 인기 많던데. 툭 뱉은 혁재의 말에 동해는 혁재의 멱살까지 잡았다. 너 여자 친구 생기면 나랑 안 놀 거잖아. 데이트한다고 바쁠 거잖아. 쏘아붙이는 말에 혁재는 장난을 거뒀다. 알았어. 동해의 손을 떼어내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동해가 씩씩대는 몸으로 물었다. 나랑 노는 게 좋아, 걔랑 노는 게 좋아. 혁재는 그 유치한 질문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놀아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속으로 생각한 말 대신 혁재는 너,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혁재는 선배를 찾아가 고백을 거절했다. 돌아온 교실 안에서 다른 친구들과 책상 하나를 놓고 떠들면서 해맑게 웃는 동해를 보며 혁재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동해가 아무개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 나는 이동해처럼 같이 있는 시간을 잃기 싫어서 거절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동해의 입에서 뱉어질 질문이 두려웠다. 네가 뭔데?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 사이라는 타이틀로 겨우 붙잡고 있는 관계가 홧김에 깨지지 않도록 혁재는 자신의 감정을 더 절제해야만 했다. 제 감정은 죽일 수 있어도 동해와의 관계는 그럴 수 없었다.






5. 그 애는 뒷모습만


동해는 자기와 뻔히 눈이 마주쳤으면서 그대로 등을 돌려버리는 혁재를 가만히 보고만 서 있었다. 동해는 혁재의 등을 보는 것을 유독 싫어했다. 보폭이 큰 혁재를 부지런히 따라 나란하게 걷는 것도 그 이유였다. 자기 앞에서 보여진 등이 돌아보는 일 없이 그대로 떠나갈 것 같았다. 시선이 고정된 채 동해는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내밀어진 선물을 뒤로 하고 동해는 혁재가 걸어나갔던 복도를 따라 뛰었다. 섭섭함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같은 상황이 있었을 때 그렇게 혼자 서운하고 애가 탔던 자신이 바보 같아진 기분이었다. 교문 밖을 벗어나자 이미 멀어진 혁재가 보였다. 이혁재! 혁재는 들리는 동해의 소리에 발걸음만 살짝 늦췄을 뿐,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뗐다. 작아지는 혁재의 뒷모습을 보면서 동해는 입술을 씹었다. 결국 눈물이 터졌다. 






6. 死에 死를 더한


둘의 냉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작년 시덥잖은 농담으로 함께 하루를 채웠던 만우절도 올해는 혼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교정을 가득 채운 벚꽃마저 괜시리 미워 보이는 오늘은 혁재의 생일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혁재라 매년 생일 때에는 꼭 맛있는 케이크를 선물해 주기로 했던 지난 날의 약속이 계속 동해를 괴롭혔다. 결국 동해는 종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어깨 한쪽에 가방을 둘러메고 혁재의 반으로 향했다. 소란스럽게 열리는 교실 문에 종례 준비를 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시선을 옮겼다. 조용해진 교실 안에서 동해의 슬리퍼 끄는 소리만 들렸다. 동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뒷자리에 앉은 혁재의 책상 위에 케이크 상자를 던지듯이 놓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혁재가 동해를 올려봤다.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얽혔다. 화난 표정으로 혁재를 노려보던 동해가 지난 날 혁재가 그랬던 것처럼 홱 등을 돌렸다. 들어올 때와 같이 큰 소음을 내며 문을 닫고 나가는 동해를 지켜보던 혁재는 동해가 놔두고 간 케이크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투명한 필름지 사이로 케이크를 확인한 혁재가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꼭 이동해다웠다.




 






7. 다시 붙이게


하굣길에는 혁재와 동해가 자주 가던 분식집이 있었다. 학교와는 거리가 꽤 있어서 찾는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다. 혼자 가게에 들어선 동해는 오랜만에 보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고 매번 앉던 자리에 가방을 내렸다. 습관처럼 2인분을 주문하려던 동해가 급하게 뒷말을 수정했다. 마주 보이는 빈 자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져서 동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막 나온 떡볶이를 밀어 넣었다. 휴지를 꺼내려고 테이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노란색 포스트 잇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짧은 내용을 전부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동해는 한눈에 필체의 주인을 알아봤다. 신경질적으로 포크를 내려놓은 동해가 눈가에 몰리는 물기를 떡볶이와 함께 꾸역꾸역 삼켜냈다. 떡볶이 값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 가방을 챙겨 뛰었다. 당장 봐야 했다. 보고 싶었다.


 

 







8. 너 나와


제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짧은 통화에 혁재는 서둘러 현관을 열고 나섰다. 땅을 보고 선 발갛게 부은 눈꼬리에 혁재는 가슴이 시큰해져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제 머리를 한 번 헤집은 혁재가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먼저 입을 뗐다.




H 케이크 맛있더라.


H 나 혼자 다 먹었어.


H 어, 떡볶이 맛있었냐?


D 아니.


D 너 때문에 하나도 맛 없었어.


H 그럼 내일 같이,


D 가. 나랑만 가. 다 나하고만 해.




H 연애도?


D 연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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