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공격

w.dd

 






a.

 

 



교실에는 하복과 춘추복이 제멋대로 뒤섞여 있었다. 동해도 오늘 아침부터는 하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 터였다. 아직 가동되지 않은 에어컨으로 인해 활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크림색 커튼이 나부꼈다. 동해는 아까부터 제 뒤에서 날라오는 눈꼽만한 지우개 가루가 신경쓰였다. 초등학생도 안 할 이런 유치한 장난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뻔히 이혁재였다. 하루의 마지막 수업인 만큼 늘어진 오후 해를 따라 동해도 길게 늘어졌다. 머리카락에 지우개 가루가 쌓여 있을 생각에 후두둑 머리를 털었다.


혁재는 제가 생각한 대로 원하는 반응이 없자 금세 지루해졌다. 그래서 덜컹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면서 책상에 엎드렸다. 다음은 청의 개항과 근대화 운동으로 제1차 아편전쟁은 1840년에 시작 되어... 단조로운 역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혁재는 자세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기 오 분 전 기가 막히게 잠에서 깬 혁재는 창가 분단 맨 뒷자리인 자기 자리에서 사선으로 두 칸 앞에 보이는 동해의 동그란 머리통을 바라봤다. 혁재는 옆 짝의 연습장을 말도 없이 제 책상으로 끌어 와 제일 뒷장을 쭈욱 경쾌하게 찢었다.


이번엔 지우개 가루 보다는 느낌이 컸다. 툭, 소리와 함께 발끝으로 떨어진 종이 뭉치를 동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차버렸다. 이번에는 혁재를 일부러 놀리려는 장난이 담긴 행동이었다. 어쭈. 혁재는 열정적으로 더 많은 종이 뭉치를 만들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던져댔다. 동해 바로 뒤에 앉은 영진이 머리통을 맞고는 반사적으로 뒤를 쳐다봤다가 '뭘 봐, 씨발아.' 혁재의 조용한 입모양에 바로 원래 자세로 돌아섰다.


아주 폭격을 쏟아 붓는 혁재의 종이 뭉치 세례에 동해는 판서를 하는 역사 선생님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뒤를 돌았다. 


"야, 미쳤어? 하지 마."

"얘, 먜챼썌? 햬댸."


동해가 나름대로 인상을 쓰면서 낮춰 말한 그대로 혁재가 얄미운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저게 진짜, 뒈질... 동해가 제대로 위협을 하기도 전에 수업을 마치는 종이 먼저 교실을 울렸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기 전 이미 소란스러워진 틈을 타 동해가 혁재에게 달려들었다.


"이혁재! 뒈질래?"

"내가 뭐."


혁재가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웃음을 달고 뻔뻔스럽게 대꾸하자 동해의 입술이 빠르게 달싹거렸다. 니가 지우개 가루 던진 거랑 종이 뭉치 던진 거랑 또... 


"이동해! 나 라이터 좀 줘!"


동해의 오목조목한 취조를 끊어먹은 혁재가 교실 문을 나서려는 선생님을 확인하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혔다. 혁재의 입에서 나온 부적절한 단어에 나이가 지긋한 역사 선생이 힐긋 동해와 혁재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마저 교실 문을 나섰다.


"장난하냐? 돌았어, 미친새끼가."


동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혁재의 배를 주먹으로 한 대 쳤다. 솜방망이였지만 혁재는 부러 오버액션을 하며 아픈 척을 했다. 안 속아, 병신아. 동해의 말 한마디에 바로 표정을 풀고 낄낄거린 혁재가 책가방을 싸는 동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오늘 같이 가자."

"꺼져."

"동해 삐쳐쪄? 오빠가 떡볶이 쏠게."











b.

 

 



"아, 왜 이렇게 느려."

"너랑 달리 가방에 챙길 게 많거든."


혁재가 교실 복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한쪽다리를 떨며 기다리다가 동해가 보이자마자 면박을 줬다. 툴툴거린 동해가 마지못해 걸음을 빨리하며 가방을 제대로 고쳐멨다. 동해가 옆에 서자 그제야 혁재도 발걸음을 옮겼다. 야, 근데 오늘 생물 존나 짱나지 않았음? 왜, 뭐 했냐? 나 걍 처잤는데. 말을 말자....




골목길에 들어서자 수평선에 걸친 해가 아스팔트를 주황으로 물들였다.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5월의 바람이 하복 차림의 혁재와 동해의 머리칼을 설렁이고 지나갔다. 빠르지 않은 발걸음을 옮길 때 가끔씩 혁재의 왼쪽에 찬 손목시계와 동해의 오른쪽 손목뼈가 스쳤다.



"너 오늘 걔네들한테 왜 안 갔어?"

"누구."

"너랑 같이 다니는 애들."

"오늘 뭐 그냥 안 와도 된다는데?"

"아...."

 

"......"

"......"

"너는 왜 오늘 조규현이랑 안 갔냐."

"어? 오늘 규현이가 바쁘다고 먼저 간대."




'너 요즘 자꾸 빠진다고 선배들이 벼르는 중이야.' 뼈가 실린 현석의 어투에 오늘만 봐줘라 새끼야 하고 학교 담벼락 밑에서 튀어나왔던 혁재와 종례시간 책상 밑으로 바쁘게 규현의 이름을 찾아 '나 오늘 담임 면담이래 먼저 가' 카톡을 보냈던 동해의 발걸음이 나란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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