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

w.dd







1 종강이 코앞이었다. 그리고 여름 방학 내내 이혁재와 붙어 먹으려던 내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전공시험에 시험공부를 핑계로 이혁재의 자취방에 들이닥쳤다. 예상했던 대로 내 앞에 앉은 이혁재만 열심히 펜대를 굴리고 나 혼자 각종 sns 탐방을 하고 있는데 이혁재가 뜬금없이 그랬다.


 


´나 해외 자원봉사 가.´




동기의 허세 쩌는 셀카에 영양가 없는 댓글을 남기고 있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댓글에 적었던 것처럼 존나 띠용이었다. 씨발, 바로 앞에 사랑에 목마른 불우 이웃이 떡하니 있는데 니가 어디서 자원봉사를 가는데. 괜찮았던 기분이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언제.´


´종강 하고 바로 다음 날.´


´얼마나.´


´두 달.´


´어디로.´


´모로코.´




취조와도 같은 질문에 이혁재는 갈수록 내 마음에 안 드는 대답만 해댔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대놓고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묻자 합격자 발표가 어제 났다고 했다. 그럼 취소했어야지. 이혁재는 대답이 없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이혁재가 앉은 자리에서 내 팔목을 잡았다.




´동해, 미안.´






불과 몇 시간 전 일인 탓에 이혁재의 미안, 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서 울렸다. 미안하긴 개뿔. 하나도 안 미안하면서. 침대에 누워 필기 노트 제일 뒤에 이혁재와 여름방학 동안 할 것들을 빼곡히 적어 놓은 장을 주욱 찢었다. 꼬깃꼬깃 접혀진 종이는 그대로 방문 옆에 위치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3 점짜리 슛이었다.




 








2 학점에 딱히 욕심이 없다고 해도 이번 시험은 망한 정도가 역대급이었다. 다 이혁재 때문이야. 4번이나 빵꾸 난 출석 점수가 한몫했지만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이혁재 탓으로 돌렸다. 이혁재는 결국 캐리어를 싸 놓았다. 처음 모로코에 간다고 했을 때 어디인지 몰라서 -묻기에는 쪽팔려서 걍 아는 척했다- 뒤늦게 검색했다. 비행 시간을 보니까 숨이 턱 막혔다. 존나 멀리도 가네. 모로코 비행 시간, 모로코 날씨, 모로코 비행기 가격 빼곡히 들어찬 검색 목록 위로 과대의 카톡 창이 떴다.




오늘 시험 끝난 애들끼리 먼저 술 ㄱㄱ




이혁재는 내일까지 전공 시험이 몰려있었다. 얼굴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장소와 시간이 적힌 카톡이 연달아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스니커즈를 꿰었다. 다 뒈졌어.










3 그리고 소주 3 잔에 뒈졌다. 이동해 오늘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냐? 과대의 비웃음이 섞인 말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후에 과대에게 재연과도 같은 -열연했다- 상황을 들은 바로는 이랬다. 안주도 없이 세 잔을 연거푸 꺾던 나는 존나 취했고 말끝마다 이혁재, 씨발을 연달아 뱉었다. 첫 잔에 젓가락을 떨어트리고 두 번째 잔에 물잔을 쏟고 세 번째 잔에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나다가 휘청거리는 나를 보고 과대는 익숙하게 내 휴대폰을 찾아 이혁재의 번호를 눌렀다.




´어, 동해.´


´니 동해 뒈졌다. 찾아가.´




모자를 눌러쓰고 날 데리러 온 이혁재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 화가 차올랐다. 도서관에 있다가 호출 전화 받고 달려왔으면서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나를 부축하는 이혁재에게 너 가면 두고 봐라, 맨날 술 마시고 맨날 클럽 갈 거다, 두 달 동안 내가 뭐하고 지낼지 마르코인가 모코로인가에서 실컷 상상이나 해라 대충 이런 말들을 뱉었다.




한마디로 진상이었다.








4 눈 뜨니 이혁재의 자취방이었고, 과대의 모노드라마를 휴대폰 너머로 감상하고 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하자 이혁재가 첫번째 전공 시험을 치고 있을 시간이었다. 방 구석에 놓인 커다란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욕을 씹었다. 절대 양반은 아닌 것 같은 이혁재의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삑삑삑삑, 기계음도 지처럼 재미없었다. 내가 일어난 걸 확인한 이혁재가 내 품으로 비닐봉지를 던졌다. 잠깐 휴대폰으로 시계를 바라보더니 바로 등을 돌렸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비닐봉지를 열었다. 갈아만든 배, 헛개차, 인스턴트 북엇국까지 야무지게 집은 것들이 빼곡했다. 이혁재의 시간표는 안 봐도 줄줄 꿰고 있는 나였다. 열 시 오십이 분. 인문대 연강 시간이었다.








5 이혁재의 시험이 끝났다. 비행기가 뜨기 고작 다섯 시간 전이었다. 다섯 시간 뒤면 이혁재는 한국에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삼디다스를 질질 끌면서 이혁재의 집으로 갔다. 캐리어를 들고 문을 나서던 이혁재가 날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었다.




웃지 마, 새끼야.




정들어. 바닥만 보면서 꿍얼거리는 와중에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이혁재가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 짜증 나. 볼멘소리를 툭 내뱉으며 시트에 몸을 묻었다. 어릴 때부터 난 친절에 약했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어색하고 낯간지러워서 매번 타인의 친절을 틱틱거림으로 대신 받았다. 그리고 이혁재는 내 짜증 섞인 궁시렁거림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이혁재는 생각이 많아지면 말을 아꼈다. 나는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16중 추돌사고가 나는 바람에 이혁재가 제시간에 공항에 못 가게 되는 빻은 상상만 하는 중이라 말할 새가 없었다.








6 티켓 수속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출국 심사장 앞에 다다르자 이혁재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인사할 타이밍이었다. 이혁재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발 예쁜 거 신었네. 내가 골라 준 거였는데. 이혁재의 잠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동해.


왜.




내가 들어도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 이혁재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운전하느라 뻐근해진 목을 두어번 꺾던 이혁재가 잠시 말이 없다가 다정하게 물었다.






나 가지 말까?






감정이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씨, 소리를 내뱉었다. 그럴 거면 진작 캐리어 싸 놓지 말았어야지. 내가 가지 말라고 했을 때 알겠다고 했었어야지. 어차피 갈 거면서. 내가 저 질문에 대답 못 할 거 다 알면서. 울음기가 삐죽삐죽 입가로 몰렸다가 기어코 터졌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신발 앞코를 적셨다. 이혁재의 큰 손이 내 머리통에 닿았다.






동해, 이러면 나 힘들어서 못 가.


가, 새끼야. 너 없는 동안 나 잘 먹고, 어, 또, 잘 놀거니까, 씨발.






울음기 탓에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렸다. 병신 같이 더듬더듬 말을 놓는 나를 보면서 이혁재가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올게. 쓸데없이 다정한 그 목소리가 쿡 박혔다. 손을 들어 눈가를 꾹꾹 눌렀다. 말끔하게 물기를 훔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짧아진 줄이 마지막으로 이혁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통화 매일 하고.






겨우 진정된 감정으로 내뱉었다. 뒤통수에 가 있던 이혁재의 손이 스윽 목덜미로 내려갔다. 힘을 실어 제 쪽으로 당기는 탓에 몸이 이혁재 쪽으로 쏠렸다. 안긴 것도 아니고 뻘쭘한 자세로 나도 모르게 힘을 줘서 서 있자 이혁재가 살짝 웃었다. 귓가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바람에 얼굴에 열이 뻗치는 게 느껴졌다. 목덜미에 놓인 손가락을 가볍게 두어 번 움직인 이혁재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또 제일 짜증 나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물 가져 올게.






짧게 손을 흔들다가 출국장 뒤로 사라지는 이혁재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이혁재의 숨결이 닿았던 귓바퀴가 터질 것 같았다. 선물은 됐고, 너나 빨리 와.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너에게 닿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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