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허그데이

 

 

 

는 개뿔. 동해는 상단바 가득 떠 있는 요란한 광고 메시지들을 꾹 눌러 지웠다. 손을 떠난 휴대폰이 마구잡이로 침대 위를 뒹굴었다. 으아, 동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작은 얼굴을 두 손 가득 감쌌다. 시각이 차단되자 원인이 결코 설렘은 아닌, 조금 빠른 심장소리가 몸 안쪽에서부터 유독 크게 퍼져오는 듯 했다.

 

 

 

이동해. 학교 안 가?”

 

 

 

방문 뒤에서 엄마의 다그치는 소리가 들리자 동해는 대놓고 울상을 지었다. 침대 위에서 억지로 떨어지는 발이 무슨 철근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동해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엄마는 기어코 방문을 활짝 열고 덧붙였다. 너 그러다가 허그데이에 지각한다.

 

 

 

 

  #월간은해 12월호

해피 허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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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하얀색 패딩 위로 가방을 걸친 듯 만 듯 털레털레 문을 열고 나오자 세워진 SUV 창문에 코를 박고 머리를 만지작대고 있는 혁재가 보였다. 넓은 등판을 감싸고 딱 떨어지는 올블랙의 롱패딩 핏에 동해는 괜히 코를 훌쩍였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혁재가 자연스럽게 동해의 옆으로 발걸음을 나란히 했다.

 

 

 

어때?”

 

뭐가.”

 

동해는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퉁명스럽게 뱉었다.

 

 

 

오늘 허그데이잖아.”

 

 

 

여기도 허그데이, 저기도 허그데이. 동해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구겨졌다. 능숙하게 손질한 제 머리카락을 가리킨 혁재가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동해의 대답을 재촉했다.

 

 

 

학주한테 걸려서 이 추위에 머리나 박박 감겨라.”

 

저는 촉망받는 이과 유망주라 그럴 일이 없네요.”

 

 

 

대놓고 퉁퉁 불은 말투에도 늘상 있는 일인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며 혁재는 동해의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부스럭거리며 서로의 패딩이 스치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 진짜....... 진짜 싫어, 허그데이!

 

 

 

 

 

 

 

 

 

 

 

 

언제나 그렇듯 수업이 끝난 뒤의 복도에는 저마다의 목소리들로 소란스러웠다.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보고 있는 커플 주위로 당당하게 빨간빛이 맴돌았다. 그러니까, 둘이 허그를 했는데 걔는 빨간빛이 안 났대. 무리를 지어 오늘자 핫토픽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동해는 혁재의 반 친구를 불렀다.

 

 

혁재한테 나 오늘 점심 안 먹을 거라고 좀 전해 줘.”

 

혁재 지금 문제집 풀고 있을 건데. 직접 가서 말해도 된다는 뉘앙스로 혁재의 1분전 근황을 말해 주는 현우에게 동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늘 하루 철저하게 피해다닐 심산이었다. 눈 마주치는 것도 절대 안 돼. 동해는 점심시간 종소리가 울리기 전 복도를 빠져나갔다.

 

 

교내를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소각장 뒤편이었다. 패딩 속으로 얼굴을 푹 파묻고 쭈그려 앉아 몸을 최대한 말아 보아도 낮은 기온 탓에 동해의 뺨이 금세 발갛게 물들었다. 내가 왜 이래야 되는데. 하면서도 삼선 슬리퍼가 신겨진 흰 양말은 히터가 틀어진 따뜻한 교실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뿌옇게 올라오는 입김 사이로 동해는 본격적으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웹툰 애플리케이션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

 

 

 

삐끗한 손가락이 애꿎은 유튜브를 열었다. 차가운 공기 틈에서 미세하게 복숭아 냄새가 났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뒤에서 패딩 품 속으로 자기를 감싸안은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혁재였다. 어깨동무와 차원이 달랐다. 동해는 지금 완벽하게 혁재의 팔 안에 가두어져서, 안겨 있었다.

 

 

 

울 동해, 추운데 밥도 안 먹고 여기서 뭐해. 너 그렇게 앉아있으니까 완전 펭귄 같애.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충격이 가득한 눈을 하고선 동해는 천천히, 삐그덕 소리가 날 만큼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기 가슴쪽으로 시선을 박았다. 빨간빛이었다. 새빨간. , , 씨발. 상황파악이 끝나자마자 동해는 벌떡 일어나 몸을 틀어 이혁재의 눈을 가렸다. 얼어있던 손끝에서부터 혁재의 피부 온도가 미지근하게 맴돌았다.

 

 

 

뭔데. 뭐야.”

 

 

 

동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눈을 가리긴 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지가 문제였다. 존나 튈까. 아니면 대놓고 다른 애랑 허그 하고 왔다고 구라 깔까. (말이 안 됨.) 이렇게 선명하게 빨간빛으로 나올 줄은 몰랐지. 얘는 어떻게 알고 왔는데. , . 점점 꼬리를 물고 침식되는 패닉에 동해는 자기 손목에 올려진 온도를 미처 눈치 채지 못 했다.

 

 

뒤늦게 손바닥이 떼어지는 느낌에 다급하게 정신을 차려 봤지만 이미 의문이 가득 담긴 혁재의 눈과 마주친 후였다. 동해는 그대로 내달렸다. 중간에 슬리퍼가 벗겨질 뻔한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벗어나야했다. 하필 패딩이 하얀색이라. 지난날의 안목에 입술을 짓씹으며 빨간빛이 새어나가지 못 하도록 몸을 꼭꼭 웅크리고 달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와서야 엉망으로 섞여진 숨을 골랐다. 제 자리에 앉아서 온통 차가운 바람에 터진 얼굴로 동해는 제 몸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 사이에 빨간빛은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요란한 봉지가 눈을 끌었다. 무지무지 달콤한 미니 초코롤케익. 혁재가 저를 위해 일부러 매점에서 사 온 게 분명했다. 한숨이 낮게 깔렸다.

 

 

봤겠지? 봤을 거야. 못 봤을 리가 없어. 미친, 어떡하냐. 동해가 무지무지 달콤한 미니 초코롤케익 위로 머리를 쿵 박았다. 눌려진 빵 사이로 초코 필링이 튀어나와 투명한 봉지 안에서 꾸에엑 죽는 소리를 냈다. 씨발....... 죽고 싶다.

 

 

 

 

 

 

 

 

 

 

 

 

죽고 싶냐?“

 

 

현우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혁재는 아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떨어졌다. 혹시 몰라서 허그의 정석으로 아주 꽉 끌어안았음에도 불구하고 빨간빛이라고는 현우 눈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가 다였다. 돌아가며 프리 허그를 시전하는 혁재 면전으로 드문드문 친근한 욕설이 박혔다. 그러니까, 이동해는 왜 이런 반응이 아니냐고. 터져나오는 함성 소리에 눈을 돌리자 교실문 근처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커플의 맞닿은 상체 틈으로 선명한 빨간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품에 안긴 여자애 얼굴이 온통 달았다.

 

 

이동해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혁재는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기 전 동해네 반을 찾아왔었다. 수업 시간 내내 멍한 눈으로 나사 열 두 개쯤 풀려 있다가 쉬는 시간 종 소리가 들리자마자 책상 안으로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엎어져 있는 동해를 내내 지켜본 동해의 짝이 쟤 오늘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대신 혁재에게 해명해야 했다. 혁재는 말없이 엎어진 동해의 뒷모습을 보다가 알겠다며 돌아갔다. 그 미묘한 표정의 변화에 동해의 짝은 고개만 갸웃했다.

 

 

 

마지막 수업인 국어 시간 내내 영어 교과서 192페이지를 펴 놓고 있던 동해는 일부러 느릿느릿 가방을 챙겼다. 혹시나 이혁재가 교실 밖에 서 있을까 봐 아예 한참 뒤에 집에 가려는 계획이었다. 점심시간 이후 계속 머리를 굴려 봤지만 답은 없었다. 노답 인생아. 썰물처럼 아이들이 쓸려간 교실에 어느새 동해 혼자만 남아있었다.

 

 

 

동해는 빼꼼 교실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혁재는 없는 것 같았다. 진짜 먼저 갔냐. 찰나의 서운함이 들기도 전에 동해는 또 한 번 숨을 멈췄다. 복숭아 냄새. 놀란 동해의 입에서 쌍시옷이 나오기 전에 혁재는 먼저 선수를 쳤다.

 

 

 

.”

 

 

 

익숙한 목소리가 귓바퀴에 내려앉자 동해의 어깨가 위로 커졌다가 푸스스 꺼지는 것이 혁재의 가슴팍에 붙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해피 허그데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동해가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 새끼의 의도가 뭔지 간에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두려운 감정이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 눈치도 없이 동해의 몸에서 퍼진 빨간빛이 선명하게 교실 안을 비췄다.

 

 

 

나도 이거 있어.”

 

 

혁재가 제 앞에 있는 빨간빛을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놀란 동해가 몸을 틀어 바로 보려고 했지만, 뒤에서 동해의 상체를 가득 안고 있던 혁재가 힘을 주어 제지시켰다.

 

 

 

그런데 내년에 보여 줄 거야.”

그게 뭐야.”

 

 

그제서야 눈치를 챈 동해가 잔뜩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루 종일 사람 놀래키기만 하고. 괜히 기대하게 만들고. 삐죽삐죽. 안 봐도 썰면 툭 잘릴 것처럼 한껏 튀어나와 있을 동해의 입술 생각에 혁재는 웃음이 번졌다.

 

 

 

 

진짜야. 내년에 보여 줄게. 그러니까 내년까지 나랑 계속 같이 다녀. 혼자 집에 가려니까 무섭더라.”

 

 

 

알았지. 짐짓 장난스럽게 툭 건드리며 하는 말에 동해의 머리통이 한참 뒤에야 끄덕끄덕 움직였다. 귀여워.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별안간 혁재의 머리위로 매서운 손길이 날아왔다. ! 놀람 반 억울함 반으로 쳐다본 동해의 얼굴이 더 억울해 보여서 혁재는 벌린 입을 뻘쭘하게 다물었다. 아니, 내가 죄책감까지 느낄 일이냐고. 입 밖으로 씨이,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씨이? 내가 씨발이다, 새끼야. 어쩔 거야. 이거.”

 

 

동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아직도 빨간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쩔 거냐고. 아직 애들 많을 텐데 이거 달고 둘이 나가 봐. 그러거나 말거나 혁재는 성큼성큼 동해의 뒤로 다가섰다. 입으로는 온통 짜증이면서 의문 가득한 눈은 빙글 혁재를 좇았다.

 

 

내가 가려 줄게.”

 

 

 

동해의 뒤에 선 혁재가 자기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품을 벌려 동해의 몸을 푹 감쌌다. 검은색이니까 잘 안 보일걸. 이러고 집까지 가자. 펭귄처럼.

 

 

장난하냐.”

 

 

동해를 안은 채로 정말 펭귄처럼 뒤뚱뒤뚱 발을 옮기는 혁재의 행동에 동해의 목소리에도 슬핏 웃음기가 걸쳤다.

 

 

 

, 비켜.”

광고하면서 집에 가게?”

 

그럼 잘 좀 걸어 봐.”

니가 다리가 짧아서 그래. , . 앞에 봐, 앞에.”

 

 

 

 

 

 

 

 

, 내가 내년에 두고 볼 거야.

 

때는 서로 해피 허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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