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카톡! 삽심 초 간격으로 울려대는 메신저의 소리가 습기로 쩐 혁재의 방 안을 울렸다. 여기서 습기란 방금 동해와 만나고 돌아온 혁재의 눈가를 기준으로 쟀음을 밝힌다. 현재 대화창 두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는 하얀색 말풍선 창의 주인공 역시 이동해다. 쉴 새 없는 카톡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폰을 집어 든 혁재의 시야로 다섯 살 남짓한 귀여운 남자아이의 사진으로 지정된 동해의 프로필 사진이 눈치도 없이 가득 들어찬다. 으아아, 씨바아알! 괴로운 비명과 함께 혁재의 손에서 떠난 휴대폰이 처참한 모습으로 나뒹굴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은 혁재가 베개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안구 습도가 제멋대로 선 혁재의 머리칼처럼 삐죽 증가하고 있었다.
스무 살 차이
w.dd
사건의 전말은 이동해의 가정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의 부모님은 또래의 평범한 부부들 보다 금술이 -상당히- 좋으신 편이었다. 그리고 그 좋은 금술은 동해가 외동아들로 살아온 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퍼펙트하게 증명이 되었다. 그렇게 동해의 집 안에는 동해와 스무 살 차이의 늦둥이 막내아들이 생겼다. 동해와 똑 닮은 동생 원이를, 반평생 형제에 목말라했던 동해는 제 아들처럼 챙겼고 원이도 그런 동해를 아빠처럼 따랐다. 다섯 살배기 아이의 아직 덜 자란 조그마한 입술에서 나오는 호칭은 형아 보단 빠빠가 훨씬 편함이 사실이기도 했다.
약간은 남다른 형제 관계에 군 시절 동해의 별명은 '원이 아빠' 였고, -관물대 한가득 원이의 돌 사진이 붙어있었다- 한창 나들이에 재미 붙일 나이인 원이가 동해의 두 번째 손가락을 꼬옥 쥐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거리를 배회할 바로 이 시점. 동해의 아빠 호칭은 최고가를 달리고 있었다.
아들이 아빠를 쏙 빼닮았다는 둥, 아빠가 엄청 젊다는 둥 이러한 짧은 대화는 동해가 원이를 데리고 다닐 때면 따라붙는 필수적 요소였고 동해는 젊은 아빠 노릇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즐길 때도 있었다. 원아, 형아가 우리 원이 아빠 같대. 원이와 눈높이를 맞춰 앉아 원이 볼에 제 볼을 비비적거리는 동해는 영락없는 철부지 형이었다.
*
화창하게 날이 밝은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깬 동해는 텅 빈 집에 원이와 저만 남아있는 것을 알고는 당황했다.
“뭐야, 원이 왜 혼자 있어. 엄마랑 아빠는?”
원이의 웅얼거리는 말을 듣던 동해는 날짜를 곱씹었다. 오늘은 부모님이 부부 동반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시험 준비 때문에 한동안 통 못 본 혁재와의 실로 오랜만의 데이트 날이기도 했다. 어떡하지. 원이를 제 무릎에 앉혀 차려 있는 아침상을 원이와 함께 다 비운 동해는 원이의 입가에 붙은 밥풀을 닦아 주며 혁재와의 데이트에 원이를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금이야 옥이야 귀한 동생을 집에 혼자 두고 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해의 손을 꼭 잡고 데이트 장소에 나타난 원이를 본 혁재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어, 동해. 얘 동생이야? 너랑 똑같이 생겼다. 아들이라고 해도 믿겠네.”
그치? 입을 떼려던 동해에게서 스믈스믈 장난기가 피어올랐다. 이왕 데려 온 김에 좀 놀려 줄까 생각한 동해가 표정을 싹 굳혔다. 어젯밤 자기 전에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회상하며 동해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았다.
“혁재야, 사실 얘 내 애야. 말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이제 더 이상 못 숨기겠어. 미안해.”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연기였다. 그새 마음속으로는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까지 마친 동해가 슬쩍 혁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입까지 벌리고 잔뜩 당황한 혁재의 표정에 동해는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보아도 자꾸 입가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웃음에 못 견딘 동해가 사실을 말하기 위해 입을 떼려 했다.
“......”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고 동해를 바라보던 혁재가 한마디 말도 없이 휑하니 자리를 떠버린 탓이었다. 벌써 저만치 멀어진 혁재의 뒷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동해가 입을 떡 벌렸다. 야, 이혁재! 동해의 당황한 목소리가 택시까지 잡아타고 떠나버린 도로에 의미 없이 흩어졌다. 길게 울린 신호음이 혁재의 목소리 대신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반복된 멘트만 주구장창 뱉어냈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원이가 동해를 보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빠빠 지베 갈래.
혁재의 집으로 찾아갈까 싶었던 동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 원이를 달래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휴대폰을 쥔 동해는 퍽 난감했다. 이 상황에서 장난이었다고 고백하면 혁재가 더 화낼 것도 같았다. 그런 혁재의 모습은 처음이라 동해는 어떻게 해야 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은 애절하게 혁재를 찾는 카카오톡을 폭탄으로 보내보았지만 혁재에게선 일절의 답도 없었다. 아예 전원이 꺼져있다는 멘트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자 동해는 맥이 빠졌다.
그래도 장난인데 그냥 넘어가겠지? 막 이불에 누워 잠이 든 원이 옆에 꼬물거리며 자리를 잡은 동해가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새삼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헤어지자고 하면 무릎 꿇고 빌어야지. 원이도 같이 끌고 가서 석고대죄 해야지.
한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불안한 생각에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겨우 선잠이 든 동해의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울려대었다. 알람인가 싶어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손만 뒤적거려 겨우 액정을 확인한 동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혁재! 그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무릎까지 곱게 꿇어 앉아 받은 휴대폰 너머로 혁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동해.’
0:03 통화 시간이 깜박 거리며 통화가 종료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잠기운이 모조리 날아간 동해의 손이 벌벌 떨렸다. 안 되는데, 헤어지자고 하면 어떡하지. 잠자기 전에 꼬리를 물고 커져갔던 불안한 생각들이 어느새 동해의 눈앞에 닥쳐있었다. 집을 나선 동해 앞에 심각할 정도로 굳은 표정인 혁재가 보였다. 아, 망했다. 눈을 질끈 감은 동해가 나직히 겨우 입을 떼었다.
“혁재야.”
부르는 소리에 동해를 돌아 본 혁재의 표정은 결연함 그 자체였다.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쉰 혁재가 두어 걸음 다가와서 천천히 동해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잡힌 동해의 손등위로 곧이어 혁재의 눈물이 떨어졌다.
“괜찮아. 그런 거 다 괜찮아. 너만 있으면 돼. 진짜야. 원이라고 했지? 어제 많이 생각했어. 원이 내가 잘 키울게. 아니, 우리 같이 잘 키우자. 숨기지도 말고. 원이랑 너 욕 안 먹게 내가 지킬 거야. 정말. 내가 다 지켜줄게... 난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더라.”
“야, 이혁재...”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을 마친 혁재가 그대로 동해를 끌어안아 한 품에 꽉 안았다. 안겨버린 동해가 얼떨결에 혁재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제 어깨를 축축하게 만드는 혁재의 흐느낌이 커질수록, 혁재의 등을 토닥여 주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동해의 입가가 스리슬쩍 올라갔다. 결국에는 잔뜩 올라간 광대를 주체하지 못한 동해가 아예 혁재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적어도 한 달 치 눈물을 동해의 품에서 다 뽑아내고 있는 혁재는 눈치조차 못 챌 듯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