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발렌타인데이

w.dd

 

 



결국 입국 심사를 끝내기도 전에 싸웠다. 으레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다툼의 계기는 사소하지만 파장은 큰 법이었다. 동해는 유독 해외 스케줄을 힘들어했다. 국내 이동보다 더 빈도 높게 밥 먹듯이 왔다갔다 하는 일본 스케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혁재는 장난을 걸며 동해의 기분을 챙겼지만 오늘은 혁재도 그냥 받아줄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았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내내 입술을 꾹 닫고 한 마디도 안 하더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혼자 배기지 클레임으로 휙 가버리는 뒷모습에 혁재는 세팅 안 된 머리를 사납게 헝클어트렸다. 될대로 되라지. 


둘의 냉기는 촬영장까지에서 이어졌다. 웹에만 올라가는 짧은 클립 촬영이라 크게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스케줄이라 다행이었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연인이 있다면 이러한 이벤트를 열어주고 싶다는 등 관련된 질문에 대답해 주면 된다는 스텝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해의 차례가 먼저였고 두세개의 짧은 질문에 영혼 하나 담기지 않은 여느 아이돌의 뻔한 답변을 한 동해가 촬영이 끝났다는 알림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텝들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는 동해와 다음 촬영에 잠시 대기하고 있던 혁재의 눈이 마주쳤다. 잠깐동안 서로의 눈빛이 섥히고, 이내 동해가 먼저 휙 등을 돌렸다. 저 성깔은 어떻게 이십년을 봐도 변하는 게 없냐. '나 지금 기분 존나 나쁨'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걸어가는 조그만한 뒤통수를 보면서 궁시렁댄 혁재가 스텝의 촬영 시작 외침에 표정을 바꾸고 빨간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쳐다봤다. 저래도 좋은데 어떡해.




.

.

.

'네, 마지막 질문이에요. 혹시 발렌타인데이에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발렌타인데이에 너와 함께여서 행복해.






동해와 달리 약간 길어진 촬영이 끝나고 혁재는 촬영장 밖을 나섰다. "동해는 먼저 갔어요?" 벤 문을 열자마자 동해를 먼저 찾는 혁재의 질문에 "몸이 안 좋아서 호텔로 먼저 데려다 달라고 하던데." 하는 매니저의 대답이 이어졌다. 

잠깐 안 보인다고 기분이 이렇게까지 가라앉을 수 있나. 

혁재는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괜히 애꿎은 입술만 뜯었다. 동해가 있는 306호 문을 두드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바로 옆인 자기 룸으로 돌아와 샤워를 끝낸 혁재는 침대 헤드에 기대서 스텝이 보내준 오늘 촬영분 가편집 영상을 재생시켰다. 휴대폰 화면 가득 동해의 얼굴이 먼저 들어찼다. 아무도 눈치 못 챘다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동해의 표정은 평소보다 웃음기도 없고 굳어있었다. 하여튼 손 많이 간다니까. 장난스럽게 혀를 찬 혁재는 이내 자기 파트의 모니터링까지 끝내고 만족한 듯 웃으며 영상을 종료시켰다. 올 때가 됐는데. 

문쪽에서 들리는 기계음에 혁재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 형한테 키를 빌린 건지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리는 호텔 문 사이로 자기 휴대폰과 혁재가 미리 룸에 놓아둔 초콜릿 상자를 꼭 쥐고 우두커니 서 있는 동해가 보였다. 초콜릿 때문에 운 건지 영상 때문에 운 건지. 눈이랑 코가 죄다 빨개져서 자신을 노려보는 동해에 혁재는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제 옆자리의 침대 시트를 제쳤다. 이리 와. 다정한 한 마디에 동해는 성큼성큼 걸어가 침대에 올라타자마자 혁재의 품에 파고들었다. 울었던 모습을 들키기 싫은지 자꾸만 혁재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 게 사랑스러웠다. 동해의 이마에 쪽 소리나게 입을 맞춘 혁재가 속삭였다. 해피 발렌타인데이, 마이 발렌타인.





* * *


D 근데, 이혁재......

H 왜

D 진짜 나 늦으면 혼자 공항 가려고 했어?

H 아니라고 멍청아 (환장)





'3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Oursider  (0) 2018.06.07
TWO TOO  (0) 2018.06.07
4교시  (1) 2018.06.07
Saturday Night  (0) 2018.06.07
Pitfall  (0) 201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