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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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발단은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학과 술자리였다. 복학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동해는 맥주 잔을 느린 템포로 들었다 놨다 하며 낯익은 얼굴 반 낯선 얼굴 반으로 채워진 술집의 분위기를 재고 있었다. 유독 장난스러운 대화가 쉴 새 없이 오가며 시끄러운 테이블이 있었다. 힐끗 곁눈질을 한 동해는 분위기의 주동범을 금세 파악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제 주위에 모여버린 여자 후배들의 호구 조사를 사람 좋은 미소로 쌩깐 동해가 목표한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2.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취해서 나가떨어지는 학우들이 비례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마시는 탓에 앞자리에 착석했던 아는 얼굴이 잠깐 사이에 모르는 얼굴로 바뀌고 그랬다. 주위에는 점차 빈 의자가 나뒹굴었다.



2-1. 1X 학번 이혁재의 옆 자리는 같은 학번 이동해가 부동으로 사수 중이었다.




2-2. 그리고 둘은 한시간 전부터 분위기가 묘했다.



3. 술잔으로 어지러운 테이블 틈에서 혁재 앞에 놓인 딸기우유를 발견한 동해가 빈 우유곽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이거 내 자취방에 많은데.




3-1. 먹으러 갈래?

 





4. 동해는 원나잇을 즐겼다. 얼굴 되고 몸 되고 매력 되는데 놔뒀다가 뭐 해. 대신 원나잇 상대와는 그 누가 되었든 말 그대로 하루로 끝났다. 그냥 나름의 철학이었다. 하룻밤에 치기 어린 맘을 품고 싶어 안달이 난 연하도 되도록 건드리지 않았다. 이건 그간의 경험이었다. 




5. 연하도 아니면서 혁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게 하루로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5-1. '경영과 1X 학번 이혁재' 라고 아무 감정 없이 저장된 이름의 발신자는 하루가 마다하고 카톡이든 메시지든 전화를 쌓아댔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오늘 재무관리 휴강이라는데 같이 피시방? 정문에 쌀국수집 생겼다는데 같이 먹으러 가자. 학교에 관련된 최신 소식은 다 혁재의 메시지 한 통으로 접했다. 물론 동해는 딱히 이렇다 할 답장을 하지 않았다.

 



5-2. 수업이 끝난 강의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이혁재가 보이기 전까지는.


 

 

 

하이.

 


 

 

씨발.

 


 


6. 생각해 보면 그날 밤이 별로거나 싫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 이동해, 제목: 원나잇의 역사. 기억에 남는 순으로 집필한 방식에 의하면 최소 10p 내외에 등장할 밤이었다. 단지 동해는 육체적인 관계로 끝나는 게 깔끔하고 좋았다. 고작 많이 쳐 줘 봤자 현 남친, 그것도 얼마 안 가 '구' 타이틀 붙을 건데. 

감정 소모는 질색이었다.




7. 새로운 타겟이 생겼다. 한 학년 후배. 큰 키에 무심한 듯한 얼굴도 나름 반반했다. '선배' '점심' '사줄게' 평범한 키워드로 기회를 꼬셔낸 동해가 식당에서 막 후배의 맞은 편에 앉을 때였다. 

 

 


 

동해, 여기서 보네.

니가 왜 그그 읁는드? (어금니 꽉)


 

 



7-1. 한 번 잤던 자와 한 번 자고 싶은 자 사이에서 동해는 자기가 뭘 씹고 있는지도 몰랐다. 플러팅이 목적인 자리에서 평범한 선후배 식사인 척 땅만 파려니 딱히 둘 다 친하지도 않은데 할 말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혁재는 저 혼자 잘도 떠들어댔다. 




7-2. 이건 내가 계산할게. 왜 내가 밥 사 준다고 -꼬시려고- 데리고 온 후배의 점심값을 지가 대 주는지 모르겠지만 동해는 알 바 없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떴다.




8. [동해, 많이 아파?]

 

 

 

아, 얘 어떡하냐.




9. 자취방 침대에 누워 죄없는 이불만 수백번을 구겨가며 고민한 동해가 결심한 듯 휴대폰을 들었다. 더 찾을 것도 없이 최신 목록에 떡하니 자리잡은 번호를 눌렀다.




9-1. 어, 나 이동해인데. 우리 집 알지. 좀 와. 할 말 있어.




10. 집 앞 가로등 밑에서 동해는 팔짱을 낀 채로 몸을 웅크렸다. 후드티 하나만 뒤집어 입고 나왔더니 봄인데도 밤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빨랑 잠바 가지고 나올까. 고민하는데 저 멀리서 뛰어오는 혁재가 보였다. 어디서부터 뛰어온 건지 동해 앞에 다다르자 허리를 굽히고 한참을 헉헉댔다.




10-1. 와, 나 죽을 것 같다. 동해야. 상체를 일으키며 갑자기 동해의 어깨를 턱 잡아오는 탓에 동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런 것도 존나 어이없어. 술자리였으면 거절을 하지, 뭐라고 뛰어와? 혁재가 숨을 고를 때까지 잠시 기다린 동해가 야, 하고 불렀다.


 

 

한 번 잤다고 지금 나랑 사귀는 것 같냐?




10-2. 혁재는 혁재 나름대로 어이가 없었다. 제 딴에는 되게 정떨어지게 말하려고 한 것 같아서 처음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바짝 마른 입가에 담배가 말렸다. 느릿하게 발걸음을 끌며 동해를 담벼락에 몰아넣은 혁재가 동해쪽으로 상체를 붙였다. 


 

 

누가 사귀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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