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광 블랙으로 커스텀한 잘 빠진 본네빌을 타고 10분여 정도 모래바람 속을 달리다 보면 스퀘어마일 단위로 펼쳐진 엄청난 크기의 밀밭이 있는데, 그 입구 부근 조금은 쌩뚱맞게 지어진 술집 하나가 바로 혁재의 단골 술집이었다. 자작나무로 만든 판자를 이리저리 덧대서 쌓아올린 술집 상단에는 맥주 모양의 네온사인이 수명이 다해가는 듯 타는 소리를 내며 과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잔뜩 손때가 묻은 문고리를 쥐고 두꺼운 문을 열면 술기운의 뜨뜻한 열기와 시끌벅적한 소음이 한데 뭉쳐 튀어나왔다. 바버 왁스 재킷을 입은 혁재가 느긋한 눈길로 술집 안을 스캔한 뒤에 익숙하게 바에 앉자 마른 수건으로 글라스를 닦던 중년의 바텐더가 즉각 아는 체를 해왔다.


“밀리언 달러.”

 

“늘 마시던 거 아니고?”

“새로운 게 필요한 시점이라서요.”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드는 동안 흘러나오는 노래에 발을 까딱이며 주위를 둘러보던 혁재의 시야에 술집 문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들어찼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혁재가 과장을 조금 보태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낯선 얼굴의 남자는 이 지역 사람이 아니었다.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손길에 까만색 머리칼이 부드럽게 쏟아져내렸다. 드문 푸른빛이 맴돌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내려간 눈꼬리와는 다르게 한껏 반항적인 눈빛을 마주한 순간, 혁재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경쾌하게 두드렸다.

 

 


바텐더가 완성된 칵테일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라임 조각이 꽂혀진 글라스 속에서 붉은색의 액체가 잘게 일렁였다.


 

 


Million Dollar Baby 1

w.dd

 



“어디에서 왔어?”


남자는 벽에 기대 선 혁재를 힐긋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명백히 무시하는 태도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기색도 서려있었다. 놓칠 리 없는 혁재가 집요하게 남자의 눈을 쫓았다.

 

 


“한 잔 할래? 밤이 길어 보이는데.”

 

 


주위를 경계하던 남자는 가벼운 톤으로 던져진 그 말에 못 이기는 듯 혁재와 시선을 맞췄다. 혁재는 남자의 구겨진 눈썹에도 아랑곳 않고 길다란 손가락 끝에 걸린 칵테일잔만 홀짝일 뿐이었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내려온 머리칼이 바람에 작게 들썩였다. 지금 당장 무슨 액체라도 상관없으니 목구멍에 쏟아붓고 싶은 심정인 것도 맞았고, 오늘 밤이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도 맞았다. 그래서 남자는 뺀질하게 생긴 금발머리의 사내를 따라 바에 앉았다. 글라스에 담긴 드라이 진을 여과없이 들이켜고 나자 홧홧해지는 몸이 긴장을 조금 풀어주는 것 같았다. 


“뭐라고 부를까.”

“뭐라고 부르든.”

 

“허니, 자기, 여보, 공주.”

“.......”


기가 차서. 눈 하나 깜빡 않고 쏟는 말이 가관이었다. 어이 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동해를 향해 혁재는 기어코 마지막까지 장난기를 걸었다.


“베이비?”

 


“동해라고 불러.”

“그래. 나는 혁재고.”


안 궁금하고. 동해는 술잔과 함께 뒷말을 비웠다. 날티나는 금발머리에 유행하는 스타일 대로 쫙 빼입고는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말은 족족 잘 바른 버터 위를 굴러가는 것이 한 대 주먹을 날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피할 사이즈였다. 하필이면 걸려도. 

 

 


그러거나 말거나 혁재는 매번 똑같은 제 일상에 등장한 새로운 인물에 모든 관심이 쏠린 상태였다. 위스키가담긴 스트레이트잔이 혁재의 손안에서 빙글 돌았다.

 

“도시에서 이런 촌구석까지 어쩐 일이야? 뭐, 이유야 뻔하지만.”

 

“이유가 뭔데.”

 

 

 

“맞혀 볼까?”


 

 



사람을 찾는 중이거나

보드카 몇 잔에 잔뜩 취해버린 동해의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친 혁재가 술집의 백룸으로 막 몸을 넣었을 때, 혁재의 허리에 서늘한 금속의 물체가 닿아왔다. 혁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천천히 양손을 들여보였다. 쩝, 입술에서 여과없이 아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얻다 손을 대.”

 

 


동해가 총을 겨누고 있는 반대편 손으로 혁재의 손길이 진하게 닿아왔던 제 허리춤을 거칠게 탁탁 털어댔다. 다른 의미는 없었고, 그냥 부축 정도. 한결같이 능글대는 목소리에 동해는 보란 듯이 총구를 고쳐쥐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혁재는 들고 있는 양손을 으쓱댔다. 그래서 당장 진도 나가기도 바쁜 시간에 벌 서고 있잖아. 동해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저 주둥이에 당장이라도 총알을 쑤셔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평소 감정 동요가 크지 않는 동해를 이렇게 단시간에 빡치게 만들어 버린 사람은 제 바로 앞의 금발머리가 유일했다. 아주 박수라도 쳐드려야지.

 

 


“원하는 게 뭐야.”

눈치 빠른 혁재가 45 콜트 탄을 장전하는 동해에게 길게 볼 것도 없다는 듯 본론부터 물었다.


“지낼 곳이 필요해.”

 

“그거, 부탁이지?”

 

“좋을대로 생각하시든가.”

 

 

 


동해가 혁재를 따라 어깨를 들썩였다. 은색빛의 총구가 허공을 지나, 다시 혁재 앞으로 조준되었다. 그앞에서 혁재의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바로 총을 든 남자의 눈썹이 꿈틀댔다. 


“뭘 쪼개.”


혁재는 계획에 없던 동거가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을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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