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역사 4 (END)

w. dd




20-3. 동해는 결국 눈가로 번져오는 눈물에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 끝에 눈물 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혁재는 조용히 동해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뺨을 감싸면서 들어 올리자 동해의 고개가 힘없이 따라왔다. 뺨을 감싼 손을 옮겨 눈꼬리에 매달린 액체를 꾹 눌러서 닦아줬다. 물기 어린 입술과 코끝이 죄다 빨갰다. 혁재는 다시 한번 고개를 꺾어 동해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아까의 것보다 더 깊은 키스였다. 이번에 동해의 손은 가만히 혁재의 손 안에 포개져 있었다.



21. 제 집 드나들듯이 눌렀던 비밀번호인데도 자꾸 헛손질을 했다. 현관문이 열렸다가 채 닫히기도 전에 서로의 입술이 다시 붙었다. 내뱉는 숨이 뜨거웠다. 혁재의 마른 손이 동해의 반팔 티셔츠를 분주하게 말아올렸다. 매끈한 몸에 쪽, 쪽 붉은 입술 자국이 새겨졌다. 혁재는 손을 위로 들어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었다. 옷이 스쳐지나간 머리가 보기 좋게 흐트러졌다. 동해는 다시 제 허리 부근으로 입술을 옮기는 혁재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부드러웠다. 그리고 아찔했다.


21-1. 아파? 동해의 위에서 허릿짓을 시작하던 혁재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몰아치는 쾌락에 동해는 도리도리 고갯짓만 해댔다. 확실히 평소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교접된 부위를 포함해 온 몸이 뜨거웠다. 혁재가 힘 있게 들어찰 때마다 동해의 입에서는 달뜬 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손에 닿는 무엇이든 잡은 채로 마구 끌어안고 싶었다. 한 손으로 무게를 지탱하던 혁재가 몸을 숙여 동해의 귓바퀴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아. 생경한 감각에 자연스레 신음이 흘렀다. 혁재의 입술이 젖혀진 동해의 목선으로 옮겨갔다. 한참을 머물더니 동해를 보고 웃었다. 정신없이 들어차는 시야에서 그 웃음을 캐치한 동해가 오싹하게 전율을 느꼈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혁재의 마른 손을 더 꽉 쥐었다.



22. 오랜만에 세트로 강의실을 들어오는 둘의 모습에 오늘도 달렸냐? 물으려던 종운이 입을 다물었다. 술이라면 궤짝 놓고 시작하는 혁재의 표정이 지난밤 알코올 퍼마신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깔끔했다. 동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약간은 상기된 분위기에 종운은 질문을 바꿨다. 니네 싸운 거 아니었어? 걍 삽질 좀 했어.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동해가 대답했다. 동해의 옆자리에 앉은 혁재가 웃으면서 동해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가볍게 헤집었다. 괜히 귀 끝이 달아오르는 느낌이라 동해는 헛기침을 하며 출석 태깅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대폰을 쥐고 걸어가는 모양새가 여간 깜찍한 게 아니었다. 동해가 돌아올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혁재는 다시 제 옆자리에 앉으면서 퉁명스럽게 뭘 봐, 내뱉는 동해의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23. 동해의 휴대폰 속 메시지를 포함한 연락 수단의 최고 빈도는 다시 혁재의 이름으로 자리가 잡혔다. 예전처럼 시시콜콜한 메시지가 오고 갔다.



23-1.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던 동해의 눈이 인기 순위에 탑재된 게시글 제목을 좇았다. [저 혼자만 썸일까요?] 카톡 메시지 캡처를 잔뜩 첨부한 작성자는 자신과 연락하는 사람이 무슨 관계처럼 보이는지 물었다. 분명 좋다는 표현도 뱉었고 서로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상대방의 반응에서 확신이 안 선다는 부연 설명이 덧붙었다. 댓글은 부정적인 반응이 대세였다. '확신이 안 들게 하는 사람은 만나는 것 아님.' '어장인 거 여기서 님만 모르는 듯.' '존나 별로인데? 님이 좋아하는 거 알고 즐기는 것 빼박.' 댓글창을 주욱 내리던 동해는 별생각 없이 혁재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최근 일주일간의 대화 내용을 훑어내려간 동해가 심란해진 표정으로 홀드키를 눌렀다. 기분이 좀 나빠졌다.



23-2. 그 사이에 혁재에게 메시지가 한 통 와 있었다. 오늘 저녁 같이 먹자는 내용에 콧방귀를 뀌며 꾹꾹 키패드를 눌렀다. 이대로 혼자 집에 있다가는 삽 하나 들고 지구 내핵까지 뚫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삽이랑 언제 헤어지냐. 동해는 울상을 지으며 소지품을 챙겼다.



 



24. 그새 친분이 많이 쌓인 건지 초반의 술자리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한층 더 떠들썩했다. 여러 웃고 떠드는 소리 틈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반응하지 않을래야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훅훅 비워지는 술잔 사이로 다른 이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술집에 들어서는 혁재를 본 동해는 휙 고개를 돌려 안주 하나를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존나 꾸미고 오고 지랄. 동해의 대각선에 앉아있던 신입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의자를 가로챈 혁재가 동해에게 눈인사를 했다. 동해는 턱 밑까지 차오른 욕지거리를 제 앞에 놓인 소주잔과 함께 삼켰다. 



24-1. 두 사람 사이에 아슬한 신경전이 계속됐다. 도통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동해의 심통에 혁재의 기분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동해의 옆자리에서 술이며 안주며 이것저것 말 붙일 구실을 찾아대는 여자애가 거슬리던 참이었다. 

 

 


.......


현주의 귓속말에 자기 차례를 놓친 동해의 앞으로 야유와 함께 잔 끝까지 가득 따라진 폭탄주가 무섭게 놓였다. 가뜩이나 못하는 술에다 이미 주량을 넘어선 동해가 발개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미친 거 아니야? 동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샷을 강요하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옆자리의 현주가 손을 뻗었다. 동해 선배, 제가 흑장, 말없이 지켜보던 혁재는 단숨에 동해의 잔을 낚아채 바로 제 입에 갖다 댔다. 동해는 얼빠진 표정으로 혁재의 목구멍으로 시원하게 비워지는 잔만 쳐다봤다.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혁재가 자연스럽게 다음 게임을 종용했다. 금세 시끄러워지는 분위기 속에서 혁재와 동해의 눈이 마주쳤다. 왠지 심장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25. 무르익는 술자리와 상반되게 혁재는 조금 갑갑함을 느꼈다. 채워진 소주잔을 한입에 가볍게 털어 넣고서 담배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운의 손에 이끌려 옆 테이블에서 사이다를 홀짝대던 동해의 시선이 문 밖을 나서는 혁재를 따라갔다. 야, 나 화장실 좀.



25-1. 한 모금 깊게 빨던 혁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이동해였다. 비척비척 발을 끌며 제 옆으로 걸어오는 모양새가 제법 취한 듯 했다. 피울래? 혁재가 제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를 동해의 앞으로 내밀었다. 동해가 고개를 숙여 앞에 위치한 담배 필터를 빨았다. 속눈썹 밑으로 달아오른 뺨을 그러 쥐고 싶어졌다. 길게 연기를 뱉은 동해가 덮고 있던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자리를 잡지 못한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솟아있었다. 입술 사이에 담배를 고정한 채로 혁재는 손을 들어 동해의 머리카락에 손을 올렸다. 슥슥 움직이는 손길이 기분 좋았다. 중간 쯤 탄 담배를 마지막으로 들이켜면서 손가락을 튕겨 담뱃불을 끈 혁재가 동해를 불렀다.



야, 동해.


어.



아스팔트 위로 가볍게 나뒹구는 담배 꽁초를 바라보며 대답한 동해가 혁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다음 말을 재촉하는 동해를 보면서 혁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랬잖아. 통 연결되지 않는 문장에 동해는 더운 뺨만 긁었다.



한 번 잤다고 너랑 사귀는 것 같냐며.


뺨에 들어차는 밤 공기가 미지근했다.


우리 스무 번은 잔 것 같은데,


멀리서 들리는 시끌벅적한 술자리의 소음이 퍼져갔다.


아직도 사귀는 거 아니야?


캠퍼스는 곧 여름 방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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